황빈훙(黃賓虹)의 화론과 산수화 연구
- Alternative Title
- A Study on Art Theory and Landscape Painting of Huang Bin-hong
- Abstract
-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 서세동점의 조류 아래 중국의 미술계에서는 반전통의 기류가 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빈훙(黄賓虹, 1865~1955)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국수학파의 일원으로서 중국문화와 정신을 수호하고자 하였다. 그는 개량도 개혁도 아닌 정통의 핵심을 대면함으로써 전통회화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국학에 대한 깊은 기초와 금석학에서 찾아낸 서법으로 기존 산수화에서 운용되던 용필의 오류를 교정했다. 또한 북송대 산수화로 추소하여 묵법을 보완한 혼후화자(渾厚華滋)하고 흑밀후중(黑密厚重)한 산수화를 그려냈다. 이러한 혼후화자 산수화를 통해 중국이 추구해야 할 민족성을 담아내는 한편, 중국 전통미학인 내미(內美)론에 입각하여 실경에 기반을 둔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이에 본 논문은 청말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에 이르는 황빈훙의 긴 인생역정을 통해 당시 시대배경을 이해하고, 특히 황빈훙이 가진 전통회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가 추구 계승하려 한 정수는 무엇인지, 그리고 상응하는 산수화 예술의 구체적인 전개양상과 회화사적 의의 및 공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당시 시대배경과 그의 전반적인 학술 및 예술 탐구의 역정을 파악하였다. 이를 전통학문 학습기, 혁명 활동기, 국수학파 활동기, 여행기, 화학의 정립기, 창작의 완성기 6단계로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두 번째로 그의 화론을 통해 그가 지적한 전통 및 근대 회화의 문제점과 그 대안으로 그가 제시한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자 한다. 문제점의 외형적인 측면에서는 사왕과 사승 관련, 조시(朝市)와 강호(江湖) 관련으로 나눈다. 황빈훙은 사왕과 그 후예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그들은 필법과 묵법의 조화를 꾀했으나, 준법과 선염을 섞음으로써 필묵과 장법이 붕괴되었고, 서예를 연마하지 않음으로써 필묵에 대한 깊은 성찰이 부족해 그림이 모호하고 경박해지는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정신적 차원으로도 연결시켜 정치적 입장 및 민족적 절개와 연관시켜 비판하기도 하였다. 반면 사승은 대체로 긍정하였는데, 필묵표현에 있어서 사고인(師古人), 사조화(師造化)하며 민족적인 절개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년으로 갈수록 무법 상태의 광괴함으로 강호의 문을 열었음을 비판하였다. 그는 역대 화가들의 폐단을 지적하기 위해 ‘조시’와 ‘강호’의 개념을 고안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외형적으로는 ‘법’을 상실하여 필묵과 장법이 붕괴되며,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대상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다. 이처럼 정신적 문제점은 ‘문인화’와 ‘사부화(士夫畵)’의 구분으로 심화되었다. 그는 정신문제와 민족문화의 미래와 관련하여 ‘사부’의 정신을 독려하였다. 서예, 언어, 문자, 정신이 모두 갖춰야만 필묵과 장법에서 자유로워져 높은 화격을 얻을 수 있으며, 필묵과 장법을 장악해야만 기운생동과 내미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사부화’의 핵심에 관한 설명인 ‘군학(君學)’과 ‘민학(民學)’에 관한 개념을 제시하였다. ‘군학’과 대비되는 ‘민학’은 중국문화 정신을 대표하는 내미와 연결된다. 한편 내미가 민학 미술의 핵심정신이라면 ‘혼후화자’는 내미의 회화적 형상화를 지칭했다. 즉, 혼후화자는 곧 필법이자 묵법이며, 중화민족 회화의 정통이며, 또한 인격이자 문화적 경계 및 품격인 것이다. 황빈훙은 그가 인식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금석학에서 찾았다. 그는 당대 산수화가 필묵의 형식적이고 유희적인 측면에만 치중하여 필력이 연약해지고 필묵에 담긴 내재 정신이 부족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회화와 서예의 공통된 필법을 금석 문자 안에서 발견하였다. 황빈훙은 강화된 서법을 화법에 도입하는 ‘인서입화(引書入畫)’를 통해 앞서 지적한 외형적 혹은 정신적 폐단을 시정하고, 산수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접근법은 황빈훙이 화론과 창작에서 단순한 전통파 서화가보다 뛰어나게 했다.
세 번째로 초기부터 말기까지 그의 산수화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의 문제의식이 창작 방면에서 어떻게 구현 및 실천되었는가를 파악하고자 한다. 초기에는 서예를 학습하고 금석학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화법의 시도보다 중국 전통회화사의 대가의 기법을 습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중기에는 여행에서 경험한 실제 자연을 기준으로 한 필묵표현을 중시하였다. 후기에는 중일전쟁으로 인해 베이핑에 거취가 제한되는 10여 년의 기간 동안 연구한 이론을 바탕으로 풍부한 저작을 남겼으며, 금석학에서 비롯된 서예적 필법이 묵법으로 이어지고, ‘혼후화자’한 화풍이 등장하였다. 말기의 마지막 7년에 가장 독특한 화풍이 나타난다. 이 시기 작품은 준법과 점법이 서로 엇갈리게 생성되며 산천초목이 서로 겹치는 흑밀후중한 특징이 강화되는데, 이러한 서법원칙을 운용한 필묵표현을 통해 자연의 ‘내미’를 표현하며, 당대 중국이 추구해야 할 강건한 민족성과 연결시켰다. 또한 필묵표현을 통해 자연의 ‘내미’를 표현하고 관찰자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가능성을 열어 전통적인 필묵을 현대 회화적 어휘로 전환케 했다. 이처럼 혼후화자한 민족성과 자연의 내미와 연결되고 혼후화자한 필묵표현에 단단히 맞물려 있는 점이 황빈훙 산수화의 가장 중요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황빈훙은 해파, 경파, 광둥화단과 같은 국화계의 다른 계열보다 덜 주목받은 경향이 있다. 또한 그가 저술한 대량의 화론, 필묵연구가 대단히 현묘하며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그의 저술에 근거해 화론분석을 선행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 민국시기 화단에 대한 새로운 회화적, 이론적 탐색을 이해하고자 한다. 또한 국내에 황빈훙의 예술적 측면을 단독으로 다룬 연구를 발표하고자 한다.
- Author(s)
- 박초이
- Issued Date
- 2020
- Awarded Date
- 2020-02
- Type
- Dissertation
- URI
- https://repository.sungshin.ac.kr/handle/2025.oak/7349
http://dcollection.sungshin.ac.kr/common/orgView/000000013771
- Alternative Author(s)
- Choi Park
- Affiliation
- 성신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 Department
-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 Advisor
- 이보연
-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1
1. 연구배경 및 목표 1
2. 선행연구 소개 및 연구 계획 2
Ⅱ. 황빈훙의 생애(1865~1955) 9
1. 전통학문 학습기(1-31세, 1865~1894) 9
2. 혁명 활동기(31-44세, 1894~1907) 14
3. 국수학파 활동기(44-74세, 1907~1937) 15
4. 여행기(64-73세, 1928~1937) 18
5. 화학의 정립기(74-85세, 1937~1948) 20
6. 창작의 완성기(85-92세, 1948~1955) 23
Ⅲ. 황빈훙의 회화 이론 26
1. 사왕과 사승 관련 26
2. 조시(朝市)와 강호(江湖) 관련 32
3. ‘문인화’와 ‘사부화(士夫畵)’ 관련 35
4. ‘군학(君學)’과 ‘민학(民學)’의 미술 관련 41
5. 금석학과 산수화 관련 47
Ⅳ. 황빈훙 산수화의 시기별 전개 56
1. 초기(1865~1924): 역대 산수화 학습 56
2. 중기(1924~1935): 여행과 사생 61
3. 후기(1935~1948): 이론과 화풍의 결합 66
4. 말기(1948~1955): 창조적 화풍의 완성 71
Ⅵ. 결론: 황빈훙 산수화의 의의 75
- Degree
- Master
- Publisher
- 성신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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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학과 > 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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