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은 이숭인 시연구
- Alternative Title
- A Study on Doeun(陶隱) Lee Soong-in’s(李崇仁) Poetry World
- Abstract
- 論 文 槪 要
陶隱 李崇仁(1347, 충목왕 3년~ 1392, 공양왕 4년)은 고려 말의 儒學者이며, 政治家, 詩人이다. 이숭인은 어렸을 적부터 영민하여 글을 읽으면 모두 암기하였고, 강의를 들으면 두 번 다시 묻지 않으며 두각을 나타내었으나 고려 말이라는 혼란한 시대에 태어나 時流에 휩싸이면서 네 번의 유배와 복직을 반복하였다. 이숭인은 李成桂가 정권을 장악한 뒤 그의 진영에 가담했던 친구 鄭道傳이 보낸 黃居正에 의해 46세에 죽임을 당하였으므로 남긴 시의 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숭인은 ‘당대 文은 목은 詩는 도은’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시에 능했다.
이숭인의 문집인 『陶隱集』에는 卷 1~3에 337제 446수의 시, 卷4~5에 文 51편이 수록되어 있다. 기존의 연구는 이숭인의 생애를 다루면서 시세계를 성리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것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성리학적인 측면에서의 연구는 忠, 孝, 政治 現實에 대한 갈등이나 서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시인으로서 이숭인의 詩的 능력이나 순수한 면모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고 하겠다. 시로 당대 최고라는 평을 받은 만큼 그에 대한 연구는 詩文學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이숭인은 시 창작에 있어 모범으로 삼을 만한 것은 『詩經』이며, ‘思無邪’에 이르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여겼다. 이에 따라 詞章보다는 經典의 내용을 바탕으로 문학 작품을 창작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인위적으로 문장을 조탁하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숭인은 고려 말에 유입된 성리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성리학의 사유가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회 전 분야에 스며있는 불교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그의 시에 성리학 뿐 아니라 불교와 노장의 철리까지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숭인은 시인이었다.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겠지만, 자신의 내면 정서를 다양한 소재를 통해 드러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본고에서는 먼저 불교적 성향이 드러난 작품을 살펴보았다. 고려의 국교는 불교였으므로 사회의 전 분야에 불교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이런 까닭에 그의 작품의 기저에 불교 사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불교적 색채가 짙은 그의 시를 따로 나누어 고찰함으로써 당대의 현실 속에서 그가 지향하고 추구하던 세계관과 삶의 방향성에 대해 밝히고자 했다. 이숭인의 시에 나타난 불교에 대한 인식을 고찰하여 禪趣적 경향과 청정의 세계가 드러난 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숭인은 불교를 통해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는 삶을 살고자 했으며, 높은 정신 경계에 노니는 승려들과 교유하면서 자신도 그들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려 했다. 아울러 청정한 정신경계에 노니는 승려의 모습을 깨끗한 자연 풍광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사물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드러낸 詠物詩를 고찰해 보았다. 그의 시인으로서의 능력과 감성이 영물시에 잘 드러나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를 통해 이숭인의 내면정서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 결과 그의 영물시는 대략 현실 인식과 극복의 의지를 드러낸 시와 사물에 담은 시인의 정서로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실에서의 갈등과 좌절 또는 은둔의 심경을 읊고 있는 여타의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담담한 어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고 하겠다. 아울러 현실의 이야기를 직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현실 극복의지를 우회적인 방식을 취해 피력하였다.
세 번째로 자신의 懷抱를 읊은 술회시를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 자연인 이숭인의 모습을 살피고자 했다. 작품 곳곳에 自我 省察의 흔적이 드러나는데 본고에서는 이를 성찰을 통한 肯定意識이 드러난 경우와 일상의 한정한 정서와 感興이 드러난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숭인은 술회시를 통해 자신을 反省하거나, 곤란한 현실에서도 安分知足을 추구했으며, 일상의 일들을 日記처럼 그대로 읊어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이숭인의 시는 성리학의 색이 짙은 가운데 불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성리학의 유입으로 변화되어가는 고려 말 사상사의 조류에 긴밀하게 반응하였음을 그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이른바 文以載道적인 관점을 문학작품에 엄밀하게 적용하는 데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본다. 이숭인은 자신의 비분한 감정을 해소하는 방편으로 시를 썼고, 현실과의 갈등 또한 비교적 솔직하게 서술했다.
이숭인은 성균관 學官으로 있으면서 성리학의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불교 국가인 고려에 유입된 성리학을 정착 시키는데 주춧돌 역할을 한 뛰어난 학자였다. 한편으로 목은 이색 사후 외교 관계문서는 이숭인이 맡을 정도로 문장력이 뛰어나 당대에 文名을 떨쳤다. 그의 문학관이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文以載道的 관점에 편향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가로서의 면모는 시에서 드러났는데, 제가들은 그의 시를 두고 淸新, 高古하다고 평하였다.
본고에서는 이숭인의 시를 세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에 대한 내용은 전술한 바와 같다. 다만 이숭인이 동류와 교제하며 남긴 작품에 대해서 소략하게 서술한 감이 없지 않고, 漢詩를 중심으로 다룬 나머지 그가 남긴 散文을 통하여 시를 해석하는 시도를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고를 기약하는 바이다.
- Author(s)
- 김경미
- Issued Date
- 2017
- Awarded Date
- 2017-02
- Type
- Dissertation
- URI
- https://repository.sungshin.ac.kr/handle/2025.oak/2990
http://dcollection.sungshin.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11858
- Alternative Author(s)
- Kim, Keong mi
- Affiliation
-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 Department
- 일반대학원 한문학과
- Advisor
- 김여주
- Table Of Contents
- 目 次
論文槪要
I. 序論 1
1. 硏究 目的 1
2. 硏究史 檢討 4
3. 硏究 方法 7
II. 陶隱의 時代的 背景과 生涯 및 交遊關係 10
1. 時代的 背景 및 生涯 10
2. 交遊關係 17
III. 陶隱의 文學意識 25
IV. 陶隱의 詩世界 34
1. 佛敎認識과 禪趣的 경향 34
1) 佛敎에 대한 認識 34
2) 禪趣적 경향과 淸淨의 세계 44
2. 詠物을 통한 內面 表現 52
1) 現實 認識과 克服의 意志 55
2) 事物에 담은 詩人의 情緖 65
3. 省察과 述懷의 自己 表現 77
1) 省察을 통한 肯定意識 表出 78
2) 日常 속의 閑靜과 感興 88
V. 文學史的 意義 98
VI. 結論 102
參 考 文 獻
Abstract
- Degree
- Doctor
- Publisher
-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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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학과 > 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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