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K

西溪 朴世堂의 『論語思辨錄』 硏究

Metadata Downloads
Abstract
우리나라에서의 ‘經學’ 연구는 주로 ‘哲學’ 방면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訓?’나 ‘考證學’ 범주에 대해서는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아마도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강력한 유교 문화권 하에서의 경학이 주로 ‘經世’와 ‘思想’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경학’이 진정 순수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고, 나아가 경전을 대상으로 연구해야하는 학문의 정체성을 되찾으려 한다면, ‘경전해석학’과 ‘문자학’ 그리고 ‘훈고’와 ‘고증’ 방면에 있어서도 왕성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典籍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학계에서 ‘경학’은 이제 그 연구방향과 방법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간의 경학연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주자학 중심의 "四書集注"에 제한된 연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가 주자학의 이념을 바탕으로 건립되었으며, 인재 발굴과 양성이라는 과거시험 교재 역시 "사서집주"에 근저하여 선발되었기 때문에, 주자의 "四書集註"는 유자들에게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의 교과서였을 정도로 각광을 받아왔다. 또 이 시기의 유자들은 자신의 관점보다는 출신가문과 학파의 사승관계에 얽매여 "集註"를 공부해야만 했고, 정계에 진출하여도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지 않은 채, 편 가르기 식의 학파가 조성되다 보니 경학의 진정한 학문적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근현대에 접어들어 "韓國經學資料集成"이 完備되어 조선의 儒者들, 또는 경서 別 연구를 일목요연하게 찾아볼 수 있는 도구가 탄생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또 이를 토대로 경전주석에 많은 연구가 집중되어 활발발한 논쟁과 연구가 양산된 것은 큰 공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주자 일존주의의 학풍으로 일관하던 조선의 유자들에게 훈고나 고증, 또는 사상적 입론의 근거를 주자학이 아닌 다른 학문에 기저하였던 자료를 찾기란 매우 지난한 일이 되었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과연 조선의 경학이 "集注" 위주의 ‘주자학’ 중심인지, ‘反주자학’ 경향인지, ‘脫주자학’ 성향인지, ‘陽明學’을 지향한 것인지, ‘實學’적 성격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해당 경학가의 ‘經說’을 논거로 제시하여 꼼꼼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연구가 지금 바로 필요한 시기라고 사료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선행연구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편차를 보인 사람이 17세기 ‘서계 박세당’으로 예비 조사되었다. 조선후기까지만 해도 ‘서계 박세당’을 평가함에 있어서 주자학에 배치되는 ‘反주자학적’ 성향을 보인다고 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차츰 그의 사상을 재해석하게 되면서부터 그를 주자학 학풍에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일면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였다고 하여 ‘脫주자학’으로 述懷하는 학자들도 나타났다. 이후, 그가 남긴 몇몇 經典註解를 통해 보면, 그의 사상이 당시 시대 상황에서 다소 진보적이라고 판단하는 학자들에 의하여 ‘陽明學’ 성향을 가졌다고 인정하거나, 혹은 형이상학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여 ‘實學的’ 학풍을 지닌 유자로 인정하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도 표출되곤 하였다. 이와 같은 다양한 분석과 평가로 小結되는 ‘박세당’에 대하여, 본 연구는 그의 사상적 특징이 부각되는 立論의 근거가 과연 무엇인지를 그의 ‘經典 註解’를 통해 밝혀보고자 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兩亂이 끝난 17세기 중후반을 전후하여 조선시대의 확고한 지배 이념이자 학문으로 자리하였던 주자학 일존주의 학풍이 유행하던 시기에 주목했다. ‘禮學’, ‘經學’,‘實學’ 등 다양한 학문사조의 양상을 띠며 각양각색의 유자들이 출현하였다는 것은, 분명 조선이 百家爭鳴과도 같은 시기였음을 보여주는 實例이다. 역설적인 표현이겠으나, 사회적으로는 혼란하였을지 몰라도 사상적으로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는 傍證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7~18세기’가 당시 획일화되어 있던 학풍에 다양한 물꼬를 트게 되는 시점이었음을 전제하고, 그 선두주자로서의 유자로 ‘서계 박세당’에 착안하였다. 그리고 박세당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그의 사상과 학풍이 확연하게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은 단연 경전에 대한 해석 즉 ‘經學觀’이라 생각하여, 본고는 그의 경전 주해 가운데 "論語思辨錄"을 연구의 底本으로 설정하고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의 경전 주해 양상이 17세기 조선사회의 학문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는 데에 이 논문의 귀착점이 설정될 것이
다.
본 연구의 장별 개요를 간략하게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에서는 본 연구의 취지와 목적, 그리고 문제의식과 선행연구물에 대한 소개와 분석을 다루었다. 이어 제2장에서는 박세당의 생존 당시(17세기)의 역사적?사회적?사상적 배경을 조사하여 박세당이 기존의 주자학적 사유의 틀로부터 벗어나는 갈등의식을 탐색하였다. 제3장부터는 본 논고의 주력 부문으로서, 박세당의 유작인 "論語思辨錄"을 구조적으로, 또는 서술上에 나타난 대략적인 특징들을 정리해 보았다. 즉 "思辨錄"을 저술하게 된 동기, 그리고 "論語思辨錄"에 나타난 형식적인 특징과 주해 양상을 "集註"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구분하여 정리했다. 제4장은 "논어사변록"의 주해 부분 가운데, ‘훈고와 훈석’에 따라 기존의 "집주"와 경계를 그을 수 있는 부분들을 조사?분석하였고, 제5장에서는 "논어" 경문에 대하여 박세당만이 갖고 있는 의리적?철리적 해석 관점을 찾아내어 보았다.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박세당을 반주자니, 탈주자니, 양명학이니, 실학이니 운운했던 선행 연구결과로부터 벗어나 그에 대한 독자성과 자유분방한 경학관을 부여함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는데, "논어사변록" 상에 나타난 바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박세당은 우선 개방적이며 독자적인 학문태도와 수용관을 가지고 있다. 당대 주자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용감히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을 개진하였다. 이는 "집주"의 설이 옳지 못하다고 폄하하거나, 성인(공자)의 본지를 벗어난 주석이라 비판하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둘째, "論語思辨錄" 전반에 깔려 있는 기저는 ‘공맹유학’으로의 복귀를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는 주해 곳곳에 이르길 “경문 하나하나에 많은 주석과 경설이 붙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바람직한 현상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공자의 本旨로부터 벗어나거나 유학사상을 왜곡하여서는 안 됨”을 강조하
고 있다. 셋째, "論語思辨錄"의 書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세당은 思辨的이거나 형이상학적 담론의 소지가 있는 부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의 경전 주해는 실증적이어야만 했고, 실재하는 모습이어야만 동의했으며, 나아가 합리적인 부분만을 옹호한다. "論語" 경문 가운데 ‘攻乎異端’은 이의 단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박세당의 經學觀은 훗날 조선 경학의 독자성과 개방성, 그리고 유학이 實事에서 진리를 찾아야만 하는 실학정신과 창의적 경전해석학의 학풍을 낳는 영향으로 전승되었다.
Author(s)
김희영
Issued Date
2014
Awarded Date
2014-02
Type
Dissertation
URI
https://repository.sungshin.ac.kr/handle/2025.oak/4065
http://dcollection.sungshin.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8922
Affiliation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Department
일반대학원 한문학과
Advisor
김용재
Degree
Master
Publisher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Appears in Collections:
한문학과 > 학위논문
공개 및 라이선스
  • 공개 구분공개
  • 엠바고2014-02-20
파일 목록

Items in Repository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