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가건설기 농촌 민주선전실의 조직과 활동
- Abstract
- 이 논문은 해방 직후부터 농업협동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1958년까지 ‘민주선전실’의 조직과 운영에 대해 살펴보았다. 민주선전실은 농촌을 중심으로 운영된 선전선동 기구였다. 이 기구의 활동을 통하여 북한의 당과 인민위원회가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농촌에 어떠한 역할을 부여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민주선전실은 1946년 11월 열린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를 앞두고 설치된 선거선전실로부터 시작되었다. 선거선전실은 농촌의 주민들에게 선거의 방법과 필요성을 알리고, ‘민주개혁’을 실시한 당과 임시인민위원회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선거가 끝난 후, 당과 임시인민위원회는 선거선전실의 선거선전 사업이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하고, 민주선전실로 개편하여 농촌지역에서 지속적인 선전선동 사업을 전개하였다.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을 내세운 공산주의자들이 보았을 때, 농민들은 식민지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봉건적인 집단이었다. 그러므로 농촌 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선전선동이 시급한 과제였던 것이다. 또한 앞으로 진행될 개혁에 인민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따라서 초기 민주선전실의 활동은 농촌의 식민지 잔재와 봉건주의를 퇴치하고 농민들을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선전선동의 방향은 주로 정치적·경제적 동원, 그리고 문화·위생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정치적 동원은 강연회와 독보회 등을 통해 당과 정부의 정책을 학습시키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경제적 동원은 주로 좌담회를 통한 영농기술의 전수, 지역별·개인별 생산량 공개 비교 등 증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문화·위생 산업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근대성을 인식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각종 문학·예술·체육 동호회 활동을 통해 협동심을 기르고, 집단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하였다. 또한 쾌적한 생활환경을 만들고, 농민들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여 전염병을 예방하는 등 근대적이고 선진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농촌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민주선전실 사업에 변화가 생겼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김일성은 중공군에게 전쟁에 관한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하고, 내치에 힘쓰게 된다. 김일성은 전시 농촌의 와해가 사상교육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당 정치사업을 강화하고 당원 확대 정책을 실시하면서, 민주선전실 사업도 강화시켰다.
1951년 1월 당중앙 정치위원회는 민주선전실장직을 유급화하겠다고 결정하였다. 이어서 인민위원회의 내각결정에 의해 유급직 민주선전실장 5,000명을 각 지역에 배치하였다. 전쟁기 민주선전실의 모든 사업은 전쟁에 맞춰졌다. 민주선전실장들은 ‘리(里)’ 단위 농촌에서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미화하고 정당화하였으며, 승리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등 주민들의 이탈 방지를 위한 정치사업을 전개하였다. 또한 후방동원을 위하여 증산과 현물세 납부를 독려하는 임무도 맡았다. 이들의 활동은 북한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농촌의 동원에 기여하였다. 한편 전시동원체제는 당과 국가가 중앙집권적 체제를 강화시키는 데 바탕이 되었다. 이는 1952년 12월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으로 이어져 북한 정부는 말단 행정기관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조인된 이후, 당은 전후복구사업과 전쟁 승리에 대한 정치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유급 민주선전실장제를 폐지했다. 기존 유급 민주선전실장들은 모두 생산 기업소로 보내졌으며, 민주선전실에는 전쟁기 양성된 당원이나 제대군인들이 무급 선전원으로 새롭게 배치되었다. 특히 제대군인은 사상으로 무장된 인민의 ‘모범’으로 추앙받으며 농촌의 전후복구사업과 선전선동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민주선전실 사업보다 생산 활동에 치중하자, 1952년 12월 다시 일정액의 지원금과 보수를 주는 유급제로 변경하였다.
제대군인이 민주선전실의 사업에 참여하면서 농촌 사회에 군대식 동원과 통제 문화가 자리잡았다. 그리고 강력한 군대식 문화는 농민을 동원하여 전후복구사업과 농업협동화가 이루어지는 데 기여하였다. 1958년 8월 농업협동화가 마무리된 이후, 민주선전실은 자연촌락인 ‘리(里)’ 단위에서 농업협동조합 단위로 재편되었다. 이후 1964년부터 농촌의 군중문화사업은 ‘군중문화회관’이 주도하게 되었다.
- Author(s)
- 탁민정
- Issued Date
- 2012
- Awarded Date
- 2012-02
- Type
- Dissertation
- URI
- https://repository.sungshin.ac.kr/handle/2025.oak/3736
http://dcollection.sungshin.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7162
- Alternative Author(s)
- Tak, Min Jung
- Affiliation
-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 Department
- 일반대학원 사학과
- Advisor
- 홍석률
- Table Of Contents
- 논문개요
머리말 1
Ⅰ. 북한의 정부기관 수립과 민주선전실 5
1. 선거선전실에서 민주선전실로의 개편 5
2. 민주선전실의 선전선동 사업 12
Ⅱ. 6·25 전쟁과 민주선전실 사업의 강화 20
1. 전시 민주선전실장직의 유급화 20
2. ‘리(里)’ 단위 전시동원체제 구축 25
Ⅲ. 정전 이후, 민주선전실의 재편 32
맺음말 36
참고문헌
ABSTRACT
- Degree
- Master
- Publisher
-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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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 사학과 > 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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