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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1883∼1948)의 ‘사진예술(寫眞藝術)’ 이론과  그 작품 연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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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itle: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1883∼1948)의 ‘사진예술(寫眞藝術)’ 이론과  그 작품 연구
Author(s): 이승도
Abstract: 본 논문은 1920년대 초반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일본사진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 1883-1948)의 ‘사진예술(寫眞芸術)’ 이론과 그 작품에 관한 연구이다. 
후쿠하라 신조는 일본에서 최초로 ‘빛과 그 해조(光と其諧調)’라는 자신만의 사진이론을 정립하여 사진가로서 업적을 남긴 인물로, 사진 활동 뿐 아니라 시세이도의 사장직을 맡으며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인정받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사진 활동은 1920년대 초반 가장 급진적인 세력으로 등장하여 전전(戰前)까지 일본사진계에 많은 영향을 주며 사단을 이끌어 나갔다. 
이러한 후쿠하라 신조의 사진은 일본사진사 안에서 회화적인 사진의 표현인 ‘예술사진(芸術寫眞, Pictorialism)’으로 분류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후쿠하라 신조의 초기작이자 그의 대표작인 &lt;파리와 센느(巴里とセ-ヌ)&gt;(1913) 연작은 소프트포커스에 의해 촬영된 사진으로, 회화적 효과가 잘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예술사진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쿠하라 신조의 ‘사진예술’ 은 기존의 ‘예술사진’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특히 신조에 의해 1922년에 설립된 사진예술사(寫眞芸術社)는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예술사진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사진 표현을 주창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사진은 회화처럼 수정을 가할 수 있는 피그먼트 인화법을 부정하고, 눈에 비친 그대로의 인상을 포착하는 스트레이트한 사진의 표현을 중시했다. 따라서 본 논문은 후쿠하라 신조의 ‘사진예술’ 이론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사진예술’이 일본 근대 사진사 안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후쿠하라 신조의 ‘사진예술’ 이론과 그의 작품이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당시 발표된 문헌들을 통해 정리하고자 했다. 
먼저, 후쿠하라 신조의 사진사적 위치를 짚어보기 위해서 그의 활동시기를 3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후쿠하라 신조를 중심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미술계와의 영향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사진예술’ 이론이 성립될 수 있었던 배경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어서 일본 근대 사진사의 전개 양상을 살펴본다. 예술사진이 태동하기 시작하는 190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 신흥사진의 등장까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후쿠하라 신조의 ‘사진예술’이 어느 위치에 위치를 확인해보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후쿠하라 신조의 ‘사진예술’ 이론이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그의 작품과 문헌을 통해 정리하고자 했다. 신조의 대표적인 사진이론인 ‘빛과 그 해조’ 이론은 기교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진 자체의 방향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사진의 본질인 빛의 하모니에 의해 눈앞에 펼쳐진 인상을 포착하는 사진을 말한다. 이러한 ‘빛과 그 해조’ 이론은 점차 일본적 정서를 더하면서 ‘하이쿠 사진’으로 발전되어 갔고, ‘사진예술사 풍’ 혹은 ‘후쿠하라 류’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일본사단에 주류 세력이 되었다.
이와 같이 본 논문은 후쿠하라 신조의 ‘사진예술’ 이론과 그의 작품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사진사적 위치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본 논문은 국내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후쿠하라 신조의 ‘사진예술’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description>
    <dc:date>2017-12-31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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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창배(黃昌培, 1947-2001)의 생애 및 작품연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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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itle: 황창배(黃昌培, 1947-2001)의 생애 및 작품연구
Author(s): 조수민
Abstract: 해방 이후 미술계는 동양화의 정체성과 시대성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였다. 당시 동양화는 때로는 서양의 추상 양식이나 재료를 들여와 현대성을 갖추기도 하고, 때로는 수묵과 채색 등 전통의 재료와 기법을 통해 동양 정신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을 확립하려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동양화가 모색한 현대성은 여전히 한국의 현대미술로 인정받지 못했고, 동시에 무엇이 타당하고 합당하게 계승되어야 할 전통인지, 그리고 그 계승 방식은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합의도 도출되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가속화 된 세계화의 흐름 속에 전통은 계승되기보다 해체되어야 할 대상으로 더욱 논의되었고, ‘탈경계’, ‘확장’과 같은 논의 속에 동시대 미술을 참고한 한국화의 재료 기법 및 형식 방면의 개혁이 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21세기 한국화는 재료와 기법에 있어서는 혼합적이고, 표현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는 주로 초현실주의나 팝아트와 연관된 혼성적 장르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성은 일부 평론가들에 의해 21세기 한국화가 동시대 미술의 일부로 거론되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한국화가 진정으로 타자의 위상을 벗어나 동시대 미술의 주체적 일원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보편화가 21세기 한국화에 요구되는 최선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분분하다. 최근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해 미술계와 학계의 주목을 받는 대표적인 화가로 황창배(1947-2001)를 꼽을 수 있는데, 그가 1970년대 말부터 2000년 무렵까지 보여준 역정은 한편으로 관념화, 형식화, 이데올로기화된 전통을 부단히 극복하는 동시에 전통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토대로 그것이 동시대 한국화의 문맥 속에 주체적이면서도 조화롭게 발휘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색 및 제시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본 논문은 이러한 황창배의 생애와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가운데, 황창배의 한국화가 가진 동시대적 특징을 규명하고자 한다. 더불어 그가 모색한 방식과 최근 21세기 한국화에 나타나는 전통 해체 방식을 모두 포괄하여 향후 21세기 한국화가 조금 더 주체적이고 풍성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는데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자 한다.|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the art community has been actively debating the issue of the identity and contemporary characteristic of  ‘Dongyanghwa(東洋畵, Oriental Painting)’. Oriental Painting, at that time, brought in Western abstact styles and materials on the one hand to provide modernity for its own, and, on the other hand, utilized traditional materials and techniques such as sumuk(水墨, oriental black ink) and chaesaek(彩色, oriental colored ink) to establish an identity based on the oriental spirit. However, the modernity that Oriental Painting sought at that time was still not recognized as contemporary art in Korea, and at the same time, there was no sufficient consensus on which traditions should be inherited and how those traditions should be inherited.
However, under the trend of globalization that has been accelerated since the 1990s, tradition has been discussed as something to be dissolved rather than inherited, and reformation in material techniques and forms referring contemporary arts was promoted under the discussion on ‘breakup of boundary’ and ‘extension’. As a result,  ‘Hangukhwa(韓國畵, Korean Painting)’ in the 21st century has been understood as blended in terms of materials and techniques, and as hybrid genre related to surrealism and pop art in terms of expression and content. This tendency has also been the basis for some critics to consider 21st-century Korean Painting as a part of contemporary art. However, there still exist diverse and various views on whether Korean Painting has truly escaped, by such efforts, from the mere object position and has found its position as a subjective and independent member of contemporary art, and above all, whether such universalization is the best demand for Korean Painting in the 21st century. Hwang Chang-bae(黃昌培, 1947-2001) can be cited as a representative painter who has recently attracted the attention of the art community and academia in relation to this issue. It is meaningful that he continuously explored and presented, by his great journey from the late 1970 to 2000, with sufficient understanding of tradition, the possibility of tradition to be demonstrated subjectively yet harmoniously in the context of contemporary Korean Painting, while firmly overcoming the idealization, formation, and ideologicalization of tradition.
This paper attempts to look deep into the contemporary characteristics of Hwang Chang-bae's Korean Painting by specifically analyzing his life and works. In addition, this paper’s ultimate purpose is to find a path for the 21st century Korean Painting to develop in more proactive and rich way through embracing all his methods of exploration and the tradition-dissolving methods that appear in recent 21st Korean Painting.</description>
    <dc:date>2022-12-31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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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빈훙(黃賓虹)의 화론과 산수화 연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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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itle: 황빈훙(黃賓虹)의 화론과 산수화 연구
Author(s): 박초이
Abstract: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 서세동점의 조류 아래 중국의 미술계에서는 반전통의 기류가 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빈훙(黄賓虹, 1865~1955)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국수학파의 일원으로서 중국문화와 정신을 수호하고자 하였다. 그는 개량도 개혁도 아닌 정통의 핵심을 대면함으로써 전통회화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국학에 대한 깊은 기초와 금석학에서 찾아낸 서법으로 기존 산수화에서 운용되던 용필의 오류를 교정했다. 또한 북송대 산수화로 추소하여 묵법을 보완한 혼후화자(渾厚華滋)하고 흑밀후중(黑密厚重)한 산수화를 그려냈다. 이러한 혼후화자 산수화를 통해 중국이 추구해야 할 민족성을 담아내는 한편, 중국 전통미학인 내미(內美)론에 입각하여 실경에 기반을 둔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이에 본 논문은 청말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에 이르는 황빈훙의 긴 인생역정을 통해 당시 시대배경을 이해하고, 특히 황빈훙이 가진 전통회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가 추구 계승하려 한 정수는 무엇인지, 그리고 상응하는 산수화 예술의 구체적인 전개양상과 회화사적 의의 및 공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당시 시대배경과 그의 전반적인 학술 및 예술 탐구의 역정을 파악하였다. 이를 전통학문 학습기, 혁명 활동기, 국수학파 활동기, 여행기, 화학의 정립기, 창작의 완성기 6단계로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두 번째로 그의 화론을 통해 그가 지적한 전통 및 근대 회화의 문제점과 그 대안으로 그가 제시한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자 한다. 문제점의 외형적인 측면에서는 사왕과 사승 관련, 조시(朝市)와 강호(江湖) 관련으로 나눈다. 황빈훙은 사왕과 그 후예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그들은 필법과 묵법의 조화를 꾀했으나, 준법과 선염을 섞음으로써 필묵과 장법이 붕괴되었고, 서예를 연마하지 않음으로써 필묵에 대한 깊은 성찰이 부족해 그림이 모호하고 경박해지는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정신적 차원으로도 연결시켜 정치적 입장 및 민족적 절개와 연관시켜 비판하기도 하였다. 반면 사승은 대체로 긍정하였는데, 필묵표현에 있어서 사고인(師古人), 사조화(師造化)하며 민족적인 절개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년으로 갈수록 무법 상태의 광괴함으로 강호의 문을 열었음을 비판하였다. 그는 역대 화가들의 폐단을 지적하기 위해 ‘조시’와 ‘강호’의 개념을 고안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외형적으로는 ‘법’을 상실하여 필묵과 장법이 붕괴되며,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대상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다. 이처럼 정신적 문제점은 ‘문인화’와 ‘사부화(士夫畵)’의 구분으로 심화되었다. 그는 정신문제와 민족문화의 미래와 관련하여 ‘사부’의 정신을 독려하였다. 서예, 언어, 문자, 정신이 모두 갖춰야만 필묵과 장법에서 자유로워져 높은 화격을 얻을 수 있으며, 필묵과 장법을 장악해야만 기운생동과 내미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사부화’의 핵심에 관한 설명인 ‘군학(君學)’과 ‘민학(民學)’에 관한 개념을 제시하였다. ‘군학’과 대비되는 ‘민학’은 중국문화 정신을 대표하는 내미와 연결된다. 한편 내미가 민학 미술의 핵심정신이라면 ‘혼후화자’는 내미의 회화적 형상화를 지칭했다. 즉, 혼후화자는 곧 필법이자 묵법이며, 중화민족 회화의 정통이며, 또한 인격이자 문화적 경계 및 품격인 것이다. 황빈훙은 그가 인식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금석학에서 찾았다. 그는 당대 산수화가 필묵의 형식적이고 유희적인 측면에만 치중하여 필력이 연약해지고 필묵에 담긴 내재 정신이 부족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회화와 서예의 공통된 필법을 금석 문자 안에서 발견하였다. 황빈훙은 강화된 서법을 화법에 도입하는 ‘인서입화(引書入畫)’를 통해 앞서 지적한 외형적 혹은 정신적 폐단을 시정하고, 산수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접근법은 황빈훙이 화론과 창작에서 단순한 전통파 서화가보다 뛰어나게 했다.
 세 번째로 초기부터 말기까지 그의 산수화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의 문제의식이 창작 방면에서 어떻게 구현 및 실천되었는가를 파악하고자 한다. 초기에는 서예를 학습하고 금석학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화법의 시도보다 중국 전통회화사의 대가의 기법을 습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중기에는 여행에서 경험한 실제 자연을 기준으로 한 필묵표현을 중시하였다. 후기에는 중일전쟁으로 인해 베이핑에 거취가 제한되는 10여 년의 기간 동안 연구한 이론을 바탕으로 풍부한 저작을 남겼으며, 금석학에서 비롯된 서예적 필법이 묵법으로 이어지고, ‘혼후화자’한 화풍이 등장하였다. 말기의 마지막 7년에 가장 독특한 화풍이 나타난다. 이 시기 작품은 준법과 점법이 서로 엇갈리게 생성되며 산천초목이 서로 겹치는 흑밀후중한 특징이 강화되는데, 이러한 서법원칙을 운용한 필묵표현을 통해 자연의 ‘내미’를 표현하며, 당대 중국이 추구해야 할 강건한 민족성과 연결시켰다. 또한 필묵표현을 통해 자연의 ‘내미’를 표현하고 관찰자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가능성을 열어 전통적인 필묵을 현대 회화적 어휘로 전환케 했다. 이처럼 혼후화자한 민족성과 자연의 내미와 연결되고 혼후화자한 필묵표현에 단단히 맞물려 있는 점이 황빈훙 산수화의 가장 중요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황빈훙은 해파, 경파, 광둥화단과 같은 국화계의 다른 계열보다 덜 주목받은 경향이 있다. 또한 그가 저술한 대량의 화론, 필묵연구가 대단히 현묘하며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그의 저술에 근거해 화론분석을 선행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 민국시기 화단에 대한 새로운 회화적, 이론적 탐색을 이해하고자 한다. 또한 국내에 황빈훙의 예술적 측면을 단독으로 다룬 연구를 발표하고자 한다.</description>
    <dc:date>2019-12-31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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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惠園 申潤福 硏究</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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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itle: 惠園 申潤福 硏究
Author(s): 黃孝順.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시대 후기 풍속화의 독보를 이루었던 혜원 신윤복(1758?-1817 이후)에 대한 연구이다. 부친 신한평(1726~1809이후)의 활동 상황과 아울러 베일에 싸인 그의 신분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가 남긴 작품을 중심으로 화풍을 분석하였다.
제 Ⅰ장에서는 본 논문을 연구하게된 목적과 범위, 방법에 대하여 밝혔다.
제 Ⅱ장에서는 혜원 신윤복과 그의 부친이 활동하던 시대배경과 혜원이 독보적인 주제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사상과 문학적 배경을 알아 보았다. 실학의 발달이 가져온 저변의식의 변화와 서민의식의 성장이 그에 따른 미술 수요의 확대를 초래하였고 따라서 화가들도 주문에 의하여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왕실에서도 국가주도로 자비대령 화원제를 운영하여 국왕의 관심아래 화원들이 활발히 활동을 하였음을 밝혔다.
제 Ⅲ장에서는 혜원 신윤복의 先代로부터 내려온 화맥의 흐름을 알아보고 특히 부친 신한평의 활동에 대해 집중 조명하였다. 신한평은 영조대에 원자비대령 화원으로 왕의 어진을 그리고 관직을 제수받을 만큼 역량있는 화원이었으나 정조대에 들어서면서 그림을 잘못 그렸다고 귀양까지 다녀오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이것은 화?×“? 내려지는 순수한 징계라기 보다는 왕이 보는 그림에 성의를 다하지 않았다는 왕권 도전적 차원에서 해석된 징벌이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은 정조를 둘러싼 그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혜원의 부친이 그 배경을 둘러싼 4대를 잇는 화원 가문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이 드는 반면 혜원 신윤복은 부친이 수모를 겪는 정조대에는 오히려 화원으로 입신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피력했다. 정조 승하 후인 순조 대에 오면 신한평에 대한 평가는 눈에 띄게 좋아지고 혜원 신윤복 또한 남기고 있는 작품이 대부분 1800년대 이후로 보여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혜원이 잠시나마 화원으로 활동을 했다면 순조 대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또한 혜원과 김홍도와의 관계는 20대부터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기록으로 살펴보았다. 혜원 신윤복이 관찰자의 관점으로 묘사한 기녀들과 양반들의 만남은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의 눈이 없으면 그려내기 힘든 장면이라고 보여진다. 한폭 한 폭에 그려지는 기녀들은 신윤복에게서는 더 이상 천민의 신분이 아닌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혜원을 둘러싼 여러가지 정황을 들어 妓夫였을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Ⅳ장에서는 혜원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는데 그에게 화풍의 영향을 준 신한평과 김홍도와의 관계를 알아보았고 혜원의 작품세계를 기방풍속을 비롯하여 일반 여인들의 풍속, 그리고 춘의류의 그림들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특히 그의 그림속에 나타나는 상징적 주제들을 분석해 보고 다각도로 해석을 해 보았다.
그 외에 미인화의 의미와 기원을 통해 혜원 신윤복의 미인화가 탄생되기까지의 배경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산수화 부분에서는 혜원이 뒤늦게 산수화 필법을 익히게 된 요인을 순조 대 산수화의 유행에서 원인을 찾았으며 혜원의 말년 필법으로 보았고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자아에 대해 자연회귀 본능을 나타내는 작가의식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화조, 영모화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하였다.
Ⅴ장에서는 혜원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영향은 미술뿐 아니라 복식, 유흥과 풍속까지 널리 미쳤으며, 그 맥을 이어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늘날 남겨진 과제는 시대를 뛰어 넘었던 혜원의 작가 정신뿐 아니라 필법까지 계승해야 됨을 역설하였다.|This is a study on Hyewon Shin, Yoon-bok (1758? ~ after 1817) who held a unique position in the genre painting of late Chosun dynasty. It raised a question about his veiled status along with an activity of his father Shin, Han-pyung(1726~ after 1809) at that time and analyzed his painting style based on his paintings.
In the 1st chapter, it's stated the purpose, scope and method of the study.
In the 2nd chapter, it's found out the background of the time when Hyewon Shin, Yoon-bok and his father were active and thoughts and literary background under which Hyewon could paint with unique themes. Brought by the development of Silhak(Positivism), a change of civilians' thought and growth of civilians' recognition brought the expansion of painting and so painters drew pictures by orders. Even in the royal court, the government-drive painter's association called Jabidaeryung was operated by the king's interest.
In the 3rd chapter, Hyewon Shin, Yoon-bok's painting vein descended from his ancestors would be found out, especially focusing on his father Shin, Han-pyung's activity. Shin, Han-pyung was an able painter as much as he could draw a portrait of a king and be appointed to an official post by the Jabidaeryung-hwawon(the painters-in-waiting) in Youngjo Dynasty (1725~1776) of Joseon but suffered even in going into exile because he didn't draw a picture well in Jungjo Dynasty(1776~1800). Helped by his family's background as a family of hawon for 4 generations including his father, Hyewon Shin, Yoon-bok frankly stated that it's hard for him to succeed as a painter in Jungjo period because of his father's suffering. It also examined the friendship with Kim, Hong-dong started from their 20's by records. It's thought that a scene of a meeting between gisaengs, official dancing girls, and noble men described as an observer's view is difficult to be drawn without steady interest and affections. Hence, surrounded by various circumstances, there's a view that Hyewon was an official painter.
In the 4th chapter, Hyewon's world of works are examined along with the relationship with his father Shin, Han-pyung and Kim, Hong-do. To examine his world of works, symbolic themes revealed in his pictures including scenes of gisaengs and ordinary women were analyzed and interpreted in various views.
Besides, it also studied a background of Hyewon Shin, Yoon-bok's Miinwha, a picture of a beautiful woman through the meaning and origin of the picture along with brief explanations of Whajo, a picture of flowers, and Youngmowha.
In the 5th chapter, it states paradoxically that Hyewon's spirit as a painter as well as his style be succeeded beyond the time because the position and influence of Hyewon in art history extended to not only painting but also manners of clothes and entertainme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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