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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남 유학 3人의 性理說에 나타난 退溪學과의 접점과 간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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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itle: 영남 유학 3人의 性理說에 나타난 退溪學과의 접점과 간극
Author(s): 김용재
Abstract: 본 논문은 퇴계 이황(1501~1570) 이후, 영남 유학의 대표 유자로 알려진 3人 - 이현일(1627~1704)·이상정(1711~1781)·류치명(1777~ 1861) – 의 성리설 분석을 통하여 세 사람 간의 논리에 나타난 접점과 간극을 살펴본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3인은 이황 사후 약 100년을 주기로 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 모두는 이황의 사단칠정 이론에 반기를 들었던 근기(近畿) 지역의 율곡 이이의 후학들과 논쟁하며, 퇴계학의 정수(精髓)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3인은 17~18~19세기 정치적 배경과 역사적 환경이 달랐던 만큼, 이황의 性理說을 수용하되 그 옹호하는 논리가 각양각색이었고, 또한 이이의 사단칠정론을 비판하는 논조 역시 삼인삼색이었다.
이현일은 처사와 관료로서의 삶을 거치면서 근기 서인들의 성리설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기조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는 이이의 후학들이 이기․인심과 도심․사단과 칠정 등에 정의를 잘못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주리’와 ‘주기’의 이분법적 논리로 이황의 성리설을 고수한다.
이상정은 ‘소퇴계(小退溪)’라 불릴 만큼 이황의 학설을 宗旨로 삼았으나, 영조의 탕평책 시행 등과 연계되면서 흑백논리로 상대적 개념보다는 조화와 절충적 개념을 중시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는 이기․심성의 개념들을 ‘분개(分開)’와 ‘혼륜(渾淪)’ 그리고 ‘주·자(主·資)과 빈·주(賓·主)’라는 표제어를 등장시킴으로써, ‘상반(相反)’보다는 ‘대대(待對)’의 논리를 피력하여 근기 서인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류치명은 정조대왕 당시, 근기 남인과 영남 남인의 정치적 제휴 관계라는 배경 속에서 비록 지역을 달리하지만 학통에 있어서는 이황의 존숭하는 차원으로 귀결한다. 더욱이 이때는 대내외적으로 세도정치와 서학 및 천주교의 유입으로 인하여 전통 사상[성리학]이 위협받는 시기였다. 따라서 그는 ‘리(理)는 우월하고 기(氣)는 열등하다[理優氣劣]’라는 성리설을 가치론에 접목시킴으로써, 외세에 대응하는 논리로 피력하였다. 결국 ‘理와 氣’, ‘천리와 인욕’, ‘인간 대 금수’, ‘우월과 열등’, ‘전통과 외세’, ‘정학과 이단’의 프레임으로 현실을 파악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이론은 정치·외교 방면으로 전개되면서 ‘척사론(斥邪論)’으로 이어졌다.</description>
    <dc:date>2025-06-29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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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죽천 김진규의 생애 분기별 시 창작 양상과 거제도 유배기 시 고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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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itle: 죽천 김진규의 생애 분기별 시 창작 양상과 거제도 유배기 시 고찰
Author(s): 신영주
Abstract: 죽천 김진규의 삶은 조선 후기 환국 정치의 격변 속에 놓여 있었고, 그로 인해 유배와 복귀를 반복하는 굴곡진 생애를 살아야 했다. 이 가운데 거제도 유배기(1689~1694)는 외적 단절과 내적 고통이 극에 달한 시기이자, 그의 시 창작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문학적 절정기였다. 실제로 그가 남긴 562수의 시 중 절반 이상이 이 시기에 집중되었다. 『南征』, 『盤谷九歌』,『後九歌』 등 주요 작품들이 이때 탄생했다.
거제 유배 시기의 시는 첫째, 유배객으로서 겪는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도달한 자기 성찰을 담고 있다. 둘째, 가족과 고향에 대한 깊은 정서적 유대를 표현했다. 셋째, 술과 시를 통해 현실을 견디고 초월하려는 문예적 자족과 일탈의 기록이기도 했다. 그는 유배 속에서도 시를 통해 내면을 다듬고 고통을 해석하며, 명예나 권세를 벗어난 담담하고도 고결한 문인의 태도를 확립하였다.
결국 죽천의 유배기는 단순한 정치적 희생의 기록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문학적 성취가 함께 이뤄진 내면의 여정이자, 유배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한 경지를 보여주는 귀한 증거라 할 수 있다.</description>
    <dc:date>2025-06-29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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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22년 漢文科 교육과정 신설 과목 ‘언어생활과 한자’에 대한 기대와 전망, 그리고 제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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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itle: 2022년 漢文科 교육과정 신설 과목 ‘언어생활과 한자’에 대한 기대와 전망, 그리고 제언
Author(s): 김용재
Abstract: 이 글은 2022년 漢文科 교육과정에 새롭게 진입한 ‘언어생활과 한자’ 교육의 가능성을 긍정적 차원에서 발제한 글이다. 먼저, ‘과연 실생활에서 한자 교육의 필요성은 어디에 기인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문제의식으로 접근해 보았다. 다소 스펙트럼이 넓은 발제일 수도 있으나, ‘언어생활과 한자’가 2022 漢文科 교육과정에 ‘융합’ 선택과목으로 신규 개설된 만큼, ‘한자ㆍ한문 교육’에서의 諸문제를 다뤄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글은 실생활에서의 한자 교육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부각하고자,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한자 어휘群 선택과 접근 방안도 함께 제언하였다. 예컨대, 실생활 속에서 만연되고는 있지만, 학생들의 눈높이에 따른 흥미로운 어휘, 문화나 관습적 차이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살려볼 만한 어휘,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어원을 갖고 있는 어휘 등, 다양한 프리즘을 제시해 보았다.
끝으로, 기왕에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25년부터 ‘언어생활과 한자’ 교과서가 출간되어 ‘융합’ 선택과목으로 출발하는 만큼, 시행착오는 있겠으나 수정ㆍ보완 작업을 거듭하며 발전적 성과가 산출되기를 기대한다.</description>
    <dc:date>2025-06-29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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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석화의 『經說類篇 論語集論』에 나타난 영남 유자 4人의 學問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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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Title: 서석화의 『經說類篇 論語集論』에 나타난 영남 유자 4人의 學問觀
Author(s): 김용재
Abstract: 이 글은 영남지역의 유자 4인 ― 이황⋅이현일⋅이상정⋅류치명 ― 의 ‘學問觀’을 󰡔경설유편 논어집론󰡕에 근거하여 살핀 것이다. 󰡔경설유편󰡕은 19~20세기 경북 청송 지역에서 활동했던 서석화(1860~1924)가 편집한 책이다. 그는 이황⋅이현일⋅이상정⋅류치명이 七書(四書⋅三經)에 붙인 경설을 편집만 했을 뿐, 직접 저작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경설유편󰡕 내 주석은 모두 위 4인의 저술이다.
다만, 서석화는 퇴계 이황(16세기) 이후, 공교롭게도 약 100여년 주기로 등장한 이현일(17세기), 이상정(18세기), 류치명(19세기)의 학문이 ‘퇴계학’의 精髓라 인식했던 것 같다. 이 글은 이 󰡔경설유편 논어집론󰡕 속의 4인이 말했던 ‘學’과 ‘異端’을 중심으로, 이들이 견지한 학문관이 시대를 달리하며 어떤 推移를 보였는지에 대해 살핀 것이다.
첫째,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배움[學]’이란 ‘단순히 이론을 습득하고 본받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성’이 수반될 때 비로소 진정한 배움의 가치가 발현된다고 정의한다. 󰡔경설유편 논어집론󰡕에서는 學⋅思⋅行의 정의를 구분하면서, 경학이 사유와 지식 위주의 主知主義에 경도되어서는 아니 됨을 경계하고 있다. 유학은 오직 ‘수신’으로부터 ‘치국⋅평천하’에 이르는 ‘爲己之學’에 기반한 自省이기 때문이다. 이 ‘자성’ 속에는 ‘성찰’이라는 자기반성적 ‘자각’과 ‘실천’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둘째, ‘이단’에 대한 관점 역시 ‘이상정’ 때에 내려오면서, 주희의 󰡔집주󰡕나 ‘이황’의 주석과 다소 궤를 달리한다. 그는 ‘攻乎異端’에서의 ‘이단’이 ‘양⋅묵’이나 ‘도⋅불’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異端觀’의 변화는 훗날 19세기 조선에 서학이 유입될 때, 류치명은 ‘主從’과 ‘優劣’의 가치론에 따라 ‘정학’과 ‘이단’의 프레임으로 斥邪⋅衛正으로 발전한다.</description>
    <dc:date>2025-05-27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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